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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보팀 조회수 3224 작성일 2024-03-04 오전 9: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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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선택과목의 활성화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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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선택과목의 활성화를 위한 제언

이 중 교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9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을 기치로 내걸고 로스쿨이 출범하였다. 기존의 사법시험은 응시자 중 소수가 합격하는 시험이므로 연거푸 낙방하는 수많은 고시낭인을 초래하였고, 치열한 경쟁을 뚫기 위하여 학교수업보다는 학원강의에 의존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로스쿨제도는 다양한 전공지식을 가진 학생에게 실무법률지식과 전문법률이론을 충실히 교육하여 다양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유능한 법조인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로스쿨제도가 시행된 지 어느덧 15년이 지난 시점에 이러한 목표가 잘 달성되고 있는지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후한 점수를 주기는 어렵다. 과거 로스쿨제도에 대한 비판은 정치권이나 시민사회 등 로스쿨 외부에서 제기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로스쿨 내부에서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돌이켜 보면, 로스쿨제도를 도입할 때 표방한 목표는 로스쿨 초기에 비교적 잘 지켜졌고, 역설적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로스쿨제도가 극복하려고 했던 기존 사법시험의 병폐가 재현되고 있다. 로스쿨 초기에는 이공계 졸업생이나 다양한 사회경험을 가진 학생들의 비율이 꽤 높았으나, 현재는 대학을 갓 졸업한 문과 출신 학생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교육의 측면에서도 로스쿨 초기에는 학생들이 변호사시험 점수를 얻는 데 유리한 과목에만 몰리지 않고 조세법, 지식재산권법, 국제법 등 전문법률과목도 골고루 수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에 도움이 되는 과목 위주로 수강함으로써 선택과목은 학생들로부터 외면받기 일쑤다. 이러한 로스쿨교육의 파행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변호사시험 합격률 하락을 꼽지 않을 수 없다. 2012년 제1회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87.14%, 20132회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75.17%였는데, 시험이 거듭될수록 불합격자가 누적되어 급기야 2019년 제7회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0% 아래인 49.35%까지 떨어졌다. 그나마 변호사시험 응시를 5회까지만 허용하는 이른바 “5탈제로 인하여 2020년 이후에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50% 초반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시낭인 대신 변시낭인이 양산되고 있다.

로스쿨 초기에는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높아서 학생들이 다양한 과목을 수강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나,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50%대로 떨어지자 변호사시험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느낀 학생들이 변시적합성이 높은 과목 위주로 수강하는 현상이 일반화되어 고착되었다. 설상가상으로 로스쿨들도 변호사시험 합격률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일례로 로스쿨들은 정규수업 이외에 강의에 일가견이 있는 교수들을 초빙하여 각종 변호사시험 특강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로스쿨교육은 점점 비정상화되어 가고 있으나, 학생과 학교의 선택을 마냥 비난할 수만은 없다. 당위적인 측면보다 현실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학생과 학교의 선택은 지극히 합리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변호사시험에 불합격하면 로펌, 재판연구원, 검사 등의 확정된 진로가 무산되고 군 미필자들은 군대에 끌려갈 수도 있다. 한마디로 변호사시험 불합격으로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변호사시험 합격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선택을 하는 것이다. 로스쿨도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학교의 우열을 가리는 객관적 지표로 활용되어 변호사시험 합격률이 낮으면 로스쿨의 평판이 낮아지므로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이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문제는 개인이나 조직이 그들 차원에서 한 합리적 선택이 사회 전체적으로 합리적인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 것처럼 학생 개인과 로스쿨의 선택이 로스쿨제도의 가치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쿨교육의 황폐화 과정에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항은 로스쿨 선택과목이 고사(枯死) 직전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로스쿨에서 개설하는 과목을 흔히 필수과목, 준필수과목, 선택과목으로 구분한다. 필수과목은 규정상 학생들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으로서 학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헌법, 민법, 형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의 기본과목을 의미하고, 준필수과목은 규정상 학생들이 반드시 수강해야 하는 과목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변호사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수강해야 한다고 인식하는 과목으로서 상법, 행정법, 민사재판실무, 형사재판실무 등의 과목을 의미한다. 선택과목은 말 그대로 수강여부가 학생들의 선택에 맡겨져 있는 과목으로 전문법률과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변호사시험 과목으로 지정되어 있는 선택과목은 국제법, 국제거래법, 노동법, 조세법, 지식재산권법, 경제법, 환경법 등 7과목이다. 경제위기가 닥치면 부자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큰 어려움을 겪듯이 변호사시험 합격률 하락이라는 외부충격이 생기자 변시적합성이 낮은 선택과목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다. 학생들이나 로스쿨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이 필수과목이나 준필수과목의 비중을 높이고 선택과목의 비중을 낮추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이다. 실제 필수과목이나 준필수과목 교수들은 학생들의 높아진 요구에 부응하느라 로스쿨 초기보다 업무부담이 늘어서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고, 선택과목교수들은 학기마다 폐강을 걱정하는 등 과목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로스쿨 초기에 대거 임용된 교수들이 정년을 맞아 속속 은퇴하고 있으나, 사립대학들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신규임용을 줄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도 필수과목 교수를 우선적으로 임용하므로 선택과목 교수에 대한 충원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어떤 로스쿨은 선택과목 교수가 정년퇴직한 후 신규임용을 하지 아니하여 해당 과목을 강의할 교수가 없자 학생들이 학원 강사의 강의를 듣고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에 응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는 로스쿨 출범 시 표방한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과는 한참 거리가 있는 것이다.

현재 여러 가지 여건을 고려할 때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로스쿨 초기 때의 수준으로 높이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높이는 방법은 로스쿨 정원을 줄여서 입구(入口)를 좁히는 방법과 변호사 합격자수를 늘려서 출구(出口)를 넓히는 방법이 있는데, 양쪽 모두 당장 실현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현재의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유지하는 것을 전제로 선택과목을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변호사시험에서 선택과목을 폐지하고, 그 대신 전문법률과목 학점이수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고려할 만하다. 학점이수제는 학생들로 하여금 일정 수의 전문법률과목을 수강하도록 하여 변호사시험 선택과목을 대체하는 제도이다. 변호사시험 선택과목 간 시험범위와 난이도의 큰 차이로 인하여 특정과목으로 선택이 몰림으로써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로스쿨제도에서 외면받고 있는 선택과목의 교육을 정상화함으로써 교육을 통한 법조인 양성이라는 로스쿨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도 변시관리위원회 산하 TF에서 선택과목 시험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하니 조속히 전문법률과목 학점이수제가 시행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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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20 호 | 발행일 2024년 03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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