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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보팀 조회수 4169 작성일 2023-11-01 오후 6: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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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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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박 성 호

한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년 당시 야당(국민의힘)은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으로 민주주의가 무너졌다면서 독재정권이라고 비판하였다. 2023년 현재 야당(더불어민주당)도 윤석열 정부를 향해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검찰권을 남용하여 독재를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그때나 지금이나 정부를 비판하는 논거로서 똑같은 책이 호명되고 있다. 2018년 출간되어 널리 주목받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How Democracies Die)>이다. 이 책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두 사람이 썼다. 이들은 2016년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점차 무너지는 미국의 민주주의를 목격하면서, 민주주의 체제의 작동원리와 그 취약점을 되짚어 보고 그 회복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민주주의는 많은 나라에서 유사한 패턴으로 무너진다고 설명한다. 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불법을 동원하는 경우보다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집권한 이들이 심판을 매수하고 경쟁자를 제거하며 규칙을 바꾸는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서서히 허물어뜨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반민주적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경제 위기나 자연재해, 특히 전쟁과 폭동, 테러와 안보 위협을 구실로 삼는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 현대 정치사에서도 숱하게 목격한 바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전제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이 정치권에 발을 내딛지 못하도록 기존 정당들이 문지기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근본주의나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인물들을 미리 걸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잠재적 독재자 감별기준으로 네 가지 항목을 제시한다. 전제주의자를 가려내기 위한 일종의 체크리스트이다.

첫째, 말과 행동으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하거나 그 규범을 준수할 의지가 박약한가이다. 이는 헌법을 부정하거나 이를 위반할 의사를 드러낸 일이 있는지 등을 토대로 따져볼 수 있다고 한다. 둘째, 정치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하는가이다. 이는 경쟁자를 헌법질서 파괴자라고 비난한 일이 있는지, 상대 정당을 근거 없이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운 일이 있는지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셋째,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하는가이다. 과거 혹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정치폭력을 칭찬하였거나 혹은 비난하는 것을 거부한 일이 있는지 등으로 판단 가능하다고 한다. 넷째,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는가이다.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치적인 비난을 금지하려고 하는지, 경쟁자나 시민단체 또는 언론에 대해 법적인 대응을 하겠다고 협박한 일이 있는지 등으로 가려낼 수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감별기준을 읽노라면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사석과 공석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들을 비판하거나 공격할 때마다 쏟아내는 발언 유형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당시)의 경우 전제주의자감별기준 네 가지 항목 모두에서 양성반응을 보인다고 썼다.

그렇다면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사정은 어떨까?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사들의 상당수는 위 감별기준 중 최소한 세 가지 항목에서는 양성반응을 보인다고 판단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잘 만든 헌법도 그 자체로 민주주의를 보장하지 못한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이 여전히 왕정 지배체제 아래 있을 때 현실 정치에 민주주의 제도를 최초로 정착시킨 나라이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미국 헌법을 상당수의 국가들이 거의 그대로 베껴서 자국 헌법을 만들었지만 현실 정치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지는 못했다.

헌법도 그렇고 법률도 그렇고 법이란 것은 완전무결할 수가 없다. 어느 법이든 공백과 모호함이 존재한다. 그러한 회색지대에서 정치는 빛을 발한다. 법과 정치는 다르다. 법에 존재하는 공백을 해소하고 모호함을 구체화하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에 정답이란 없다. 정답 찾기에 익숙한 법률가들이 정치권에 진출하여 실패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상호 양보를 하면서 상황과 맥락을 짚어가며 거기에 합당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정치이다. 정치를 뒷받침하는 것은 비록 성문화된 것은 아니지만 민주사회를 지탱해온 관행적 규범이다.

저자들은 그러한 관행적 규범으로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꼽는다.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능하는 국가의 경우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성문화된 헌법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고 한다.

이 책에 따르면 상호 관용이란 규범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 경쟁자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거나 그 주장을 혐오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정당한 존재로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상호 관용이란 자신과 다른 의견도 인정하는 정치인들의 집단 의지를 뜻한다. 상호 관용이란 규범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는다. 정파를 달리하는 진영들이 서로 상대방을 위협적인 존재로 바라 볼 때 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벌어진다.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제도적 자제라는 두 번째 규범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저자들은 제도적 자제는 민주주의보다 더 오래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역사를 되돌아보아도 성군이라 일컬어지는 군왕들은 권력 행사를 자제하였다. 이에 비해 폭군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혼군(昏君)들도 극단적인 권력 행사를 서슴지 않았다.

저자들은 말하기를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은 특히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그 가치가 높다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견제받지 않는 대통령은 사법부를 친정부 인사로 채우고, 행정명령을 남발하여 의회를 우회한다고 한다. 반대로 의회가 막강한 힘을 가졌을 경우 대통령의 모든 제안을 거절하고 예산 권한을 빌미로 행정부를 혼란에 빠트리겠다고 위협할 수 있다고 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는 모두 현재 우리 정치판에서 하이퍼리얼수준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들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제도적 자제의 반대는 헌법적 강경태도(constitutional hardball)’이다.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상대를 밀어붙이는 태도를 의미한다.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은 채 오로지 경쟁자를 없애버리기 위한 전투 자세만을 취한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이 둘은 때로 서로를 강화한다. 반대로 어느 한 쪽 규범이 느슨하게 실천되기 시작하면 서로를 갉아먹는다.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라는 가드레일은 부식하기 마련이고 종국에는 민주주의라는 궤도 자체에서 탈선하여 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무너뜨리는 결과로까지 이어지고 만다.

현재 우리 정치권에는 많은 법률가 출신 정치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거리낌 없이 혐오발언과 차별적 언사를 쏟아내는 인사도 있다. 부끄러움을 알고 반성해야 한다. 법률가 출신 정치인들부터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라는 규범을 실천하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민주주의는 제도를 이루는 형식보다 그 내용을 채우는 실질이 중요하다.